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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3월 정신과학교실이 개설되었다.
 
  이만홍 교수는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동과학을 강의하면서, 구관 원무과 옆(현 구관 1층 방사선과)에 방 하나를 배정 받아 진료를 시작하였다.  

  1981년 8월 정신과 병동(52병동)을 신관 5층(현 55병동 자리)에 개설하였다.  이로써 정신과 병실이 전무했던 강원도의 지역사회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해부터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과학 강의도 시작되었다.  1984년 9월에 과장으로 신정호 교수가 부임하였으며, 1986년 주임교수로 임명되었다.  

  초기 교직원들의 열성은 지극 하여 저녁식사 후까지 사이코드라마, 무용치료 등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자원봉사하면서 적은 수의 교직원으로 환경치료병동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정신과장의 사택이 병원 내의 의사 아파트에 위치하고 있어 직장과 가정 사이의 구분이 확실치 않았으며, 순수한 집념과 봉사정신으로 모든 교직원들은 밤 9시가 되어야 병원의 일과를 끝낼 수 있었으며 야식집에서 저녁식사를 들며, 그날의 일과와 서로의 감정들에 대해 토로하는 시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갖곤 하였다.

  특히 교직원들은 폭스바겐 구형 승합차를 타고 원주 교외의 한적한 곳을 찾아 다니며 야외 감수성 훈련을 하곤 하였다.  신림의 계곡에서는 소머리를 가마솥에 삶아 한점씩 나누어 먹으며 담소하기도 하였고, 여름의 홍천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캠프 파이어를 벌이고 새벽에 스러져 자기도 하였다.  이러한 야외 감수성 훈련을 통한 교직원 상호간의 믿음이 환경치료병실을 훌륭히 이끌어 나가고, 또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성정을 하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병원 전체에 대한 기여도에서도 정신과가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교직원들의 헌신 때문이었으리라.  다른 대학병원들에서의 일반적인 정신과에 대한 홀대는 정신의학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경영의 면에서 기여가 부족하다는 점과 정신과의사들의 편협성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연세 원주의대의 정신과는 이러한 면에서 타대학병원의 모범이 되고 있다.

  1987년 9월부터 1년간 신정호 교수는 교환교수로 미국의 New York University, Milhauser Institute에서 정신과 분야의 분자생물학을 연구하고, 미국의 병실운영, 의료계 현황 등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쌓고 귀국하였다.  1991년 병원의 기획관리실장을 시작으로 진료부장, 부원장 등의 보직을 맡으면서, 병원 경영의 중추 역할을 맡음과 동시에 정신과학교실의 발전을 주도해 왔다.  그는 특히 알코올리즘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그들을위한 다양한 치료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여 왔다.  퇴원환자 추적집단 모임인 알자회(알코올 자존심 회복모임의 약자)는 7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1996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알자회를 통한 추적환자들의 단주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보고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0년 5월에는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개방병동정책을 시행하는 새로운 병동을 개설함으로써 상이한 치료적 접근법(의학적 모델, 정신재활치료 모델)을 갖는 두 개의 병동을 운영하게 되었다.

  의사 사택으로 쓰던 후문 옆의 아파트를 재활병동으로 개조하여, 1층은 재활의학과의 병실과 물리치료실로 사용하고, 2층과 3층은 정신과의 행동치료 병동(53병동)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아파트 앞뜰은 배구네트와 농구대 등을 설치하고 바닥을 아스팔트로 포장하여 환자들의 여가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뒤뜰의 텃밭은 재활치료의 하나로써 채소를 심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병동은 개방병동정책을 표방하고자 하루 몇 시간씩은 문을 열어두는 정책을 견지하였다.  즉 이 병동은 프로그램 중심적이며, 집단 중심적인 정신재활치료 모델의 병동이었고, 기존의 정신과 병동인 52병동은 정신과에서 그대로 운영하되, 개인 중심적이며 생물학적 치료 중심적인 의학적 모델의 병동으로 변화시켜, 신체적 질병 상태가 동반된 정신과 환자 및 급성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였다.

  그 당시 정신과 규모는 매우 커져서, 환자 병상수가 70병상 이상을 넘게 되었으며, 직원 수 또한 간호사 16명 남자 보호사 11명, 간호조무사 2명, 임상심리사 2명, 작업치료사 1명, 사회복지사 1명, 외래 간호조무사 2명, 뇌파기사 2명 등이었으며, 파견 인턴도 2명이 되었다. 그야말로 양적으로는 정신과학교실의 최대 번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1990년 11월에는 8년간 봉직하던 강봉선 교수가 퇴직하였고, 1991년 3월에는 본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조선의대에서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던 안정숙 교수와 연세의료원에서 수련을 마친 박진한 교수가 새로 부임하면서, 병실 확장과 함께 정신과학교실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전임교원 수가 4명으로 늘어나면서 1992년 부터는 전공의도 2명씩 선발하게 되었다.

  의학적 치료병동(52병동), 정신재활치료병동(53병동)의 2개의 병동을 운영하게 되어, 정신과학교실의 사기는 충천하게 되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생하여 병동운영 원칙들을 변화시키게 되었다.

  처음 2개 병동운영 시, 환자들의 급성기에는 의학적 치료병동에서 치료하고, 급성증상이 완화되면 재활병동으로 전원하여 재활치료를 집중적으로 받게 하는 정책으로 치료에 임하였다.  그러나 두 병동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으며, 정신과 의사 수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러한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두 개의 병동을 연계해서 운영하지 않고 각각의 병동을 따로따로 운영하여, 한 병동에 입원하게 되면 그 병동에서 퇴원하게 하였다.

  의사들도 한 병동에서만 고정 근무하는 체제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정신과 조직이 비대해져감에 따라, 개인 개인의 헌신적인 마음이 엷어지게 되고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가게 되는 조직의 생리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기창 교수는 1992년 미국의 Wayne State University, Harper Hospital에서 뇌손상 환자들의 정신과 후유증에 관한 연수를 1년간 마치고 돌아와, 뇌손상 환자들의 진료와 연구에 임하게 되었다.  외래에서 두부외상 후유증 환자들에 대한 집단치료를 주 1회 시행하여, 그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었고, 두부외상환자들을 주로 다루는 신경외과 등과의 협력진료체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사고의 증가와 소송의 증가 등으로 예전에 비해 두부외상의 정신과 후유증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시기라 이들의 정확한 장애평가 및 교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1996년에는 본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친 민성호 교수가 부임하여 전문 교원 수가 5명이 됨으로써, 진료 및 학생교육에만 전전긍긍하던 교수들에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여력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9월부터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으로부터 1학년 행동과학 강의를 위촉받아 강의 중이며, 보건복지부로부터 정신보건 전문요원 수련기관으로 지정 받아 정신보건전문 임상심리사,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 1,2급 과정을 개설 교육 중이며, 1999년 3월부터는 제2기 교육을 실시하여 2기 수료생까지 배출하였다.  

  1997년 말 한국에 IMF 파동이라는 거대한 한파가 덮치면서 경기가 꽁꽁 얼어붙게 된다.  서울의 내노라 하는 병원들이 도산의 위험에 처하면서 몇 개씩의 병실을 폐쇄한다는 조치들이 발표되었다.  감원과 월급 반납이 병원마다 번지게 되었다.  원주지역 30% 이상의 경제력을 담당한다는 한라그룹의 도산은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게 된다.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신과 진료도 더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2개의 병동 중 53병동의 가동률이 몇 달 째 떨어지게 되었다.

  병원당국의 종용에 따라 병실과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정신과 병동도 2개에서 1개로 통합하여 운영하기로 하였으며, 병상 수도 45병상으로 줄여 폐쇄 병실을 41개로 하고, 폐쇄병동 밖으로 2개의 개방병실에 4병상을 운영하며, 낮병동도 함께 운영하기로 하였다.  앞으로는 이러한 시스템으로 몇 년간 운영이 될 것이다.  한국의 의료보험체계의 변화, 정신보건법의 운영현황, 또한 주변의 정신과 진료시설의 변화에 따라 연세원주의대 정신과는 또다시 변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교수인력으로 학생들에 대한 충실한 교육, 그리고 내실있는 연구활동,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등을 위해서는 현재의 진료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내일을 위하여 최선의 상태라고 생각하며, 병동체제의 변화를 시도한 정신과학교실은 이제 양적 번성기를 지나 질적 번성기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