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콜중독과 의존성(신정호)   ▶  술잔 속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민성호)

                          ▶  분노의 처리(신정호)             ▶  알콜중독이란 무엇인가?(민성호)     

                     ▶  시골사람의 음주(신정호)
 

flo01g.gif  시골 사람의 음주
 

   대도시의 번쩍거리는 술집이나 화려한 대형 식당들에서의 넘쳐 나는 술과 취객들을 보노라면 술과 관련되는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회의 다른 여러 가지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얼른 뜨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꺼풀만 벗겨보면 꼭 그것만이 모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러한 곳에는 잘 출입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들이나 청소년에게서도 음주의 문제가 만연되어 있음은 그간의 보도로도 잘 알려졌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고 한없이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기만 한 산촌이나, 어촌이나, 농촌에서도 술 문제는 오히려 더 만연되어 있다.

   시간적으로 20여년 이상 차이가 나므로 술과 술 문제에 대한 인식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저자가 과거 서울의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실제로 술 문제나 알코올중독 환자를 자주 접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가끔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도 일회적으로 단지 금단증상의 치료를 목적으로 며칠간 치료받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에 지방의 중소도시에 소재한 현재의 병원으로 옮기어 근무하게 되었다. 우리 병원은 강원도 산간지역과 동해안의 어촌 인구들이 주로 이용하는 병원이다. 이곳에서 근무하게 된 직후부터 바로 느끼게 된 점은 정신과 분야에서 술 문제가 다른 어느 정신과 질환보다도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응급실로 데리고 온 정신과 응급 환자 중에는 술과 관련된 문제가 제일 많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심한 금단섬망이나 간성혼수와 같은 위급한 상태의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병실에 입원한 일반 정신과 환자들의 경우에도 그들의 가족력과 과거력을 조사하여 보면 거의 예외없이 환자의 집안에서 가장의 술 문제가 관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후 우리 병원에서는 알코올중독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전념하여 진료하게 되었고 그후 '알자회'란 이름의 치료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이는 알코올중독 환자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인지치료의 뜻으로 '술병(病)과 술병에 걸린 자신에 대하여 제대로 알자'는 뜻과 함께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가장 근본적인 인격의 결함의 하나인 손상된 자존심의 회복을 모토로 하여 그 머릿자들을 따서 부르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이 폐광이 되어 많이 줄어 들었으나 산간지역의 탄광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이 특히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  그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산골생활을 좋아하여 광부생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로 살아 보려고 애쓰다가 막판에까지 몰리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광산촌에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생활은 결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돈을 좀 모으면 언젠가는 도회지로 떠야겠거니 하거나, 돈이 좀 모아지면 고랭지 배추 농사로 한몫 잡을 생각을 하는 아직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있으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이든 사람들은 그럭저럭 몸이라도 온전하여 해오던 이 일이나마 계속하여 하루 하루를 꾸려갈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은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르는 광산 사고와 진폐증이다.  그들은 육신의 피로와,  미래의 불확실과 이 두려움을 술로 달래는 듯 싶다.  흔히 그들은 돼지고기 기름이 석탄가루를 녹여 없애준다고 믿고, 그래서 돼지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고, 비계가 많은 돼지고기를 많이 먹으려면 술을 같이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과음을 합리화한다.  신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불판 위에 오른 뜨거워진 비계 위에 석탄 가루를 얹고 그 석탄가루가 녹아 번지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을 큰소리치지만, 실은 자신의 몸 속에 들어간 석탄가루가 그렇게 녹아 없어지기를 바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석탄의 기름 성분이 뜨거워진 돼지 비계에서 녹아 번지는 것이야 당연한 물리 현상이지만, 몸 속에 쌓인 석탄 가루가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은 별도의 이야기일텐데도 말이다.

   어부들 또한 과음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다.  동해안의 어부였던 유명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아버지가 지나친 음주로 입원한 적이 있다. 동네 친구가 마치 비서라도 되는 냥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환자를 소개하고, 뒤따라 다니며 수발하여 주었으나 정작 본인은 음주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치료의 동기가 없어 이내 퇴원하였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후에도 그런 식으로 이곳 저곳 병원에 잠깐씩 입원하여 겨우 간장의 문제나 금단 증상만을 치료할 뿐 정작 음주 행태와 관련된 본질적 문제에 대하여는 치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부들은 흔히 바다 바람은 술기운을 빼앗아 간다고, 그래서 술을 좀 마셔보았자 술기운이 전혀 돌지 않고 그래서 결코 취하지 않는다며, 굉장히 많은 량의 음주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소주 몇 병이란 말에서 병은 으레 한 됫병 소주를 말한다.  그들 또한 매서운 추위와 어로 작업에 지친 고단한 육신의 피로도 있겠으나, 배 위의 생활에서 폭풍과 위험한 작업의 두려움과 외로움 때문에 더 술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차가운 바다 바람이 술의 열기를 빼앗아 갈지언정 몸과 뇌에 왜 영향이 없겠는가?  취한 상태라는 것을 단지 몸의 열기로만 지각하는 사람들의 실없는 소리일 뿐이다.  많은 해난 사고들이 자연의 재해만이 아니라 그 뒤에는 이러한 과음이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그러한 상황에서 균형감과 분별력을 잃게 하여 결국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때문은 아닐까.

   얼마 전 인근 오지의 한 고립적인 일개 면 지역을 선정하여 음주 실태를 조사 하였다. 주로 5,60대 이상의 중노년층이 주로 살고 있는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 동네 로써 주로 벼농사와 담배, 고추, 옥수수 등의 밭농사를 경작하는 곳이었다.  조사 당시의 시점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지난 한달 사이에 1번 이상 음주한 사람의 숫자는 2/3가 넘었다.  남자와 여자를 통털어 15.8%가 매일 음주하고 있었으며, 남자들의 70% 이상은 일주일에 3,4회 이상 매일 상습적으로 음주하여 건강에 문제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시골 생활에서 이렇게 만연되어 있는 과음의 행태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육신의 괴로움이 제일 큰 이유로 추정된다.  주어진 환경이 오락이나 운동을 비롯하여 감정적 정서적 생활을 돌보는 여건이 제한된다는 점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한때에 집중되는 과다한 노동의 피로와 오랜 세월 노동의 결과로 생긴 관절통이나 근육통과 같은 고통이 더 음주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피로의 주 요인은 저 혈당과 젖산과 같은 피로물질의 축적이다. 술은 빨리 흡수되고 따라서 칼로리를 빨리 보충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 피로 회복에 다소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통증과 피로감을 가시게 하는 약리적 효과도 있다. 이는 피로와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과로를 더 조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은 일중독자이기도 하다는 점은 이러한 연관성을 시사하는 것 같다.  이렇듯 무절제한 음주는 결국 피로를 더 가중시키고 근골격계 질환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는 마치 진통제만 복용하고 근본 문제의 해결은 미루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장기간 음주의 폐해는 아편을 비롯한 진통제의 남용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정적 정서 상태나 불편한 신체 상태의 회피를 목적으로 과음하는 것은 근본 문제를 건전하게 해결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원래의 부정적 상태를 더 조장한다. 모름지기 마음이 불쾌하고 몸이 불편한 상태보다는 마음이 유쾌하고 몸이 편한 상태에서의 절제하는 음주가 더 바람직할 것 같다.

                                                              교수     신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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