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월 정신과학교실이 개설되자 이만홍 교수(현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바로 부임하여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동과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또한 구관 원무과 옆(현 구관 1층 방사선과)에 방 하나를 배정 받아 진료를 시작하였고 당시에는 정신과 입원실이 따로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증상이 심한 정신증 환자는 서울로 전원을 시켰고, 신경증 환자는 일반과의 병실로 입원시켜 치료하였으므로 매우 불편하였다.

  1980년 3월에는 이성훈 선생이 첫 레지던트로 들어와서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1981년 3월에는 한정옥 교수(전 예수병원 정신과 과장, 현 서울 한빛 신경정신과 원장)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연구강사로 옮겨왔다.

  드디어 1981년 8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진보된 정신과 병동(52병동)이 신관 5층(현 55병동 자리)에 만들어졌는데, 처음부터 이만홍 교수가 관여하여 치료목적에 맞게 설계하였으며, 간호사 5명, 남자 보조간호사 4명을 미리 선발하여 정신과 전문직원으로서의 교육과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으며, 이 전통은 20여년 가까이 이어져 내려와서 현재의 정신보건 전문요원의 교육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때 이만홍 교수는 부임 전 캐나다에서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치료적  공동사회(therapeutic community)로서의 정신과 병동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즉 우리 나라에서 환경치료(milieu therapy)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최초의 대학병원이 된 것이다. 또한 입원실을 갖춤으로써 정신과 병실이 전무했던 강원도의 지역사회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 이해부터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과학 강의도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는 의과대학 5학년의 정신과 실습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과장이었던 이만홍 교수의 엄격한 학생지도와 한정옥 교수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실습지도 등 교수진의 열의 때문에 학생들은 정신과 실습을 공포의 과정으로 느끼게까지 되었으며,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정신적 안정을 얻기는커녕 설사와 같은 정신신체적 증상을 경험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이만홍 교수의 지도를 빗대어 그를 이만행이라 부르곤 했다.

  1983년 3월에는 강봉선 교수(현 원주 강봉선 신경정신과 원장)가 연구강사로 부임하여 전문의가 3명으로 늘었으며 첫 의국원인 이성훈 선생이 수련을 마치고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연구강사가 되었다.

  그 해에 환경치료경험 2년의 결과를 학계에 보고하여 긍정적인 반응과 타 대학병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83년 12월말에 한정옥 교수가 전주예수병원으로 옮겨갔으며, 1984년 3월에는 이영주 교수(현 부산 이영주 신경정신과 원장)가 연구강사로 부임하였다. 그 동안 병동은 환경치료병동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1984년 9월에는 이만홍 교수가 연세의료원으로 옮겨가고, 후임으로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후 조선의대 정신과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신정호 교수가 부임하였다.

  신정호 교수는 치료적 공동사회로서의 기본정책은 보존하면서 새로운 치료접근법을 다양하게 시도하여 병동은 더욱 발전하였고 원숙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1985년 2월에는 이영주 교수가 부산 한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1986년 5월에 박기창 교수가 군산개정병원에서의 공중보건의를 마치고 근무를 시작하였다. 1987년 9월부터 1년간 신정호 주임교수는 교환교수로 미국의 New York University, Milhauser Institute에서 정신과 분야에서의 분자생물학을 연구하였다.

  1990년 5월에는 당시 원장이었던 고 김대현선생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국내 대학병원 최초로 개방병동정책(open-ward policy)을 시행하는 새로운 병동을 개설함으로써 상이한 치료적 접근법(의학적 모델, 정신재활치료 모델)을 갖는 두 개의 병동을 운영하게 되었다. 당시 의사아파트였던 후문옆 건물(현재는 의국)의 2∼3층을 개조해서 한 개의 복층 병동(53병동)을 만들었으며, 앞뜰은 아스팔트로 포장하여 환자들이 자유스럽게 운동과 산책을 하도록 하였고 뒤뜰의 텃밭은 재활치료의 하나로서 채소를 심기도 하였다. 즉 이병동이 프로그램 중심적이며, 집단 중심적인 정신재활치료 모델의 병동이었으며, 기존의 52병동은 개인 중심적이며, 생물학적 치료 중심적인 의학적 모델의 병동으로 변화시켰다. 이때의 정신과 규모는 매우 커져서, 환자 병상수가 70병상 이상을 넘게 되었으며, 직원수 또한 간호사 16명 남자보호사 11명, 간호조무사 2명, 임상심리사 2명, 작업치료사 1명, 사회복지사 1명, 외래 간호조무사 2명, 뇌파기사 2명 등이었으며, 이때부터 전공의 숫자도 연차별로 2명씩 뽑기 시작했으며, 파견 인턴도 2명이었다. 그야말로 이때가 양적으로는 정신과학교실의 최대 번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1990년 11월에 강봉선 교수가 퇴직하고 후에 개업을 하였으며, 1991년 3월에는 당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조선의대에서 조교수로 있던 안정숙 교수와 연세의료원에서 수련을 마친 박진한 교수가 근무하게 되어 전문의가 4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해 7월부터 1년간 박기창 교수가 교환교수로 미국의 Wayne State University, Harper Hospital에서 두부외상환자의 정신장애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1991년에는 신정호 교수가 기획실장을 맡았으며, 이어서 진료부장을 거쳐 1995년에는 부원장이 되었다.
  1994년 9월에는 정신재활병동인 53병동을 기존의 의학적 모델의 병동인 52병동 자리로 옮겨 55병동으로 개명하여 낮병동 및 밤병동을 주로 운영하는 정신재활센터와 행동치료중심의 병동으로 그 성격을 약간 수정하였으며, 기존의 의학적 모델의 병동인 52병동은 내과병동이었던 현재의 53병동 자리로 옮겼으며 기존보다 더욱 생물의학적이며, 개인 중심적인 진료를 하였다.

  1996년 3월에는 원주기독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민성호 교수가 근무를 시작하여 전문의가 다시 5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1997년 9월부터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으로부터 1학년 행동과학 과정을 위촉받아 강의 중이며, 보건복지부로부터 정신보건 전문요원 수련기관으로 지정 받아 정신보건 전문임상심리사, 정신보건 전문간호사 및 정신보건 전문사회복지사 1, 2급 과정을 개설 교육중이며, 1998년 3월에는 제2기 교육을, 1999년 3월에는 제3기 교육을 실시하였다.  

  1997년 12월에 닥친 국가 외한위기 등 국가경제의 악화를 계기로, 병원당국의 종용에 따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1998년 1월에는 2개의 병동 체제를 1개의 병동체제로 만들었으며, 병상수도 44병상으로 줄이는 대신 폐쇄병동 밖에 병실 2개를 완전 개방병실로 새로 만들었다. 따라서 병동체제의 변화를 시도한 정신과학교실은 이제 양적 번성기를 지나 질적 번성기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