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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랑 방   

                                              제128호  : 1998. 12.  1.
                                              발  행  인    :  박     기   창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원주기독병원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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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거워짐에 대하여 ♤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밀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 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시인  박상천

 

꿈꾸는 연필과 종이
                                 

             오락실   


어릴적 끝없이 드나들던 곳
그 안에는 뭣들이 들어 있을까
오락기계와 그냥 의자가 다 였다.
그런데 난 왜 거기에 미쳐있었을까?

형형 색색의 빛깔들이 전부였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잘 드나들던 곳
이제는 나이든 것을 조금이라도
시인한다.

누나도 오락에 관심이 있었나 보다
어쨋건 컴퓨터를 샀다.
그리고 하나 더
오락기보단 컴퓨터가
더 낫다고 말하고 싶다.

누나도 나도
둘 다
컴퓨터를 좋아한다.

 

       53병동  유○훈

 

 

           추억   


한 잎의 나뭇잎처럼
당신은 떠나갔다.
당신의 떠나간 빈 자리는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하였다.

한 잎의 나뭇잎이 휘날릴 때면
당신이 생각난다.
당신과 걸어간 그 길은
나뭇잎처럼 나를
바람처럼 날려 버렸다.

당신과 함께 했던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
당신을 더욱 그리워하게 한다.
그러나 추억은 한 장의 종이처럼
찢겨 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과 함께 했던 시간은
시계바늘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한 잎의 나뭇잎처럼
내 마음에 있을 것이다.


        
       53병동  최○용

 

생각하는 오솔길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기억되는 것 중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두움 속에서 옥수수를 수확해 오신 것이다.

그것이 아마 7살로 기억되고 있다.


두 번째는 재래식 부엌에서 가족을 위해 20리 장에 가셔서

생선을 사 오시어 생선 구운 것이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봄에 놀러 가서 팔이 다쳤을 때

밤새도록 간호해 주신 모습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실천은 저희에게 몸으로써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고 확신이 됩니다.

 

 

                               53병동  원○호

 

차 한잔의 이야기

  53병동에서 찾은 나  

  약 1달여 동안 많은 생각과 병원의 프로그램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느낌은 정말 정신질환자로 가득찬 곳,  바로 TV에서 보았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곳에 내가 들어와 있다니......  정말 놀랍고 암담했다.
처음에는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입원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마음속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리워했던 곳이 바로 이런 곳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너무나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자신이 다른 환자들과는 차원이 틀린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이곳은 정신병원이 아닌 정신요양소 라고 생각했다.  병원과 요양소가 무엇이 틀리겠는가?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나의 병원 생활의 지루함과 답답함이 사라지게 될 것 같았다.
  전화나 창문, 또 규제대상이 되는 모든 부분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풍경이 그리 부럽지 않았다.  입원한지 약 15일까지는 그런 생활이 지속되게 혼자 생각을 많이 정리하고 마음속의 대화를 하며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하고 내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의 대화인 "영혼교감"을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읽어주는 영혼을 나는 "나의 연인"으로 칭하고 나의 연인과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그분을(영혼) 사랑하게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이었다.  나의 연인으로부터 자신감과 용기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물망초 꽃과 소국"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을 했기 때문에 나는 이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마음의 대화를 환청이나, 내가 보았던 사람들을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런 부분을 환시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환청이나 환시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추억....  특별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내가 나누었던 "물망초와 소국"의 사랑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53병동에서 나를 찾는 여행을 끝마치려 한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해서 투자했던 돈은 그 동안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 여비는 병원비가 될 것이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 병동에 있는 많은 환자들도 자기 자신을 찾는 노력을 함으로써 더 나은 생활 속으로 스며들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기독병원 정신과 병동이 아닌 나를 찾는 여행에서 꼭 머물러야만 하는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이곳 환자 분들 하루 빨리 내 자신을 찾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빨리 건강해 지십시오.

                                                     53병동  서○미

 

프로그램의 향기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자상하시고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아버님은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들일을 많이 하셨다.
아버님이 들일을 나가실 때면 나는 자주 따라 나섰다.
들일을 할 때도 나는 주로 아버님 옆에서 놀았고,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실 때면 아버님은 늘 나를 지게에 태우고 돌아오셨다.  
나는 그때의 기분이 항상 최고였고, 그 재미로 들일을 많이 따라 나섰다.
그때 일을 마치시고 웃으면서 "지게에 타"하는 말씀이 나는 가장 듣기 좋았고 지게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아버지 앞에서는 항상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지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가 나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일이다.

 

                           낮 병동   박○준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아빠의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빠를 소리질러 부르고 난 뒤 친구와 나를 업고 집에 돌아왔을 때 기억.
모든 게 다 내 세상인 것 같이 느꼈으며 아빠의 포근함을 느꼈다.

지금의 아버지는 저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못함이 매우 안타깝게 느껴진다.
초라한 아버지의 뒷모습이 나를 간혹 쓸쓸하게 만든다.

 

 

                           낮 병동   노○정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이야기         

          임상실습을 마치며  

이번은 두 번째 정신과 실습으로 처음부터 그리 낯설지는 않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며, 많은 프로그램들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직접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기회도 또한 가질 수 있었다.  
직접 프로그램을 맞아 진행 한 것은 처음이라 어려움도 더러 있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주로 병실의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남자 환자들과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 같았는데, 그것은 탁구나 장기, 바둑 등과 같은 오락을 함께 많이 했던 것이 이유인 것 같다. 탁구를 치며 쉽게 환자들과 친해 질 수 있기도 하였지만, 병실에 누워만 있는 환자들에게 탁구를 치게 하고 탁구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 예상외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주로 환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였고, 때로는 충고를 해 주기도 하였지만 그리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에는 병실에 들어가서 환자들과 첫 만남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고 어떤 질환으로 인하여 입원하게 되었는지 정보가 없어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참여한 병동회의에서 예전과 뭔가 달라 졌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과거(1년 전)에는 환자가 직접 병동회의의 진행에 부분들을 맞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치료진이 전적으로 병동회의를 이끄는 것이 아마도 달라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많은 병실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자유로운 TV 시청, 프로그램 참가의 자율성, 금연, 병실 통합 등이 그 예들이다.  많은 변화된 환경들이 치료적으로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반면에 몇 가지의 것들은 치료적으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든다면 프로그램 참여의 비 강제성이다.  치료 불참으로 받는 불이익이 명료하지 않다면 병실에서의 치료적 의의가 많이 상실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환자들 중 case 로 선택한 '김00'이라는 환자와 가급적이면 많은 시

간을 보내려 하였지만 환자가 약물에 대한 부작용과 우울한 감정에 자주 빠져들어 많은 만남을 가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탁구공을 무조건 위로 때려 보낸다거나 혼자 탁구를 친다거나하는 행동은 사라지고 5회 정도 탁구공을 쳐서 넘길 수 있게 변하기도 하였다.  대화를 할 때도 짧은 대답에는 명확하게 대답하는 행동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병실에서는 다른 환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치료자의 입장보다는 환자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대화하는 것이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 사람에게 '나'라는 존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치료의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여하튼 많은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요구되어짐과 그 중요성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특히 심리극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전에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세대 매지리 캠퍼스 재활학과 4학년 이 한림

 


생각하는 오솔길


 노숙자 다시서기 지원센타... 일일 자원봉사 후....


  어느 워크삽에 참여했다가 광고를 듣고 이 단체에서 추진하는 자원봉사를 하였다.  장소는 서울역 근처의 지하도이고 시간은 밤 10시 30부터 새벽 1시까지였다.  목적은 노숙자 분들을 희망의 집에 돌아가도록 정보를 주고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정신과적인 증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 면담기술이 필요했고 정신과 간호사들에게 의뢰가 들어왔던 것이었다.  
  정신간호 임상경력이 거의 7년째이고 사회봉사에 참여하고자 용기를 내어 나섰다.  3분 정도 면담을 하였다.  그중 특히 기억나는 분이 있었다.  다른 분을 면담하는 동안 라면을 드시며 내내 나를 분노에 찬 눈으로 흘겨보곤 하였다.  라면을 다 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그 분과 면담을 했다.
한참 흘겨보더니 "가란 말이야 너네가 이래봤자 소용없어, 다른 때는 관심도 없다가 어쩌다가 오고 다 소용없어........"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다시 맨 바닥에 '휙'하고 누우셨다.  많이 무섭고 떨렸다.  그러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하면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몇번 실갱이를 하였다.  잠시 몇분이 지났다.  다시 일어나 앉더니 아까 보단 덜 분노한 목소리로
"내 이야기 해 볼까?  난 이북에서 혼자 내려 왔어. 여긴 아무도 없어.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어...."하였다.  외모로 봐선 한 50-60대 사이 정도의 남성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들었고 본인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신문지라고 하였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은 깔고 잘 신문지나 종이상자가 있었지만 그 분은 맨바닥이었다.  주위에 종이상자 (노숙자분들의 저녁식사를 위해 컵라면이 준비되었었다.)를 하나 구해 펼쳐서 드렸더니  얼른 깔고 누우셨다.  내가 당장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다였다.  그날밤 가능한한 몸이 얼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새벽1시쯤 동행한 선생님들과 묵을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면담했던 분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노숙자 분들이 가족이야기를 할 때 눈시울을 적셨고 가족들에 대한 애증을 표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왔다.  사는 방법 중에 무언가 바꿔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절약하며 살아야겠다고..........!

                                        53병동   김영선 간호사


오고 가는 이야기들

 

 ♣ 병실소식 ♣


 1> 11월 6일 "오락회" 프로그램에 김종석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마이벤트)가
      자원봉사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 11월 13일 "사랑방 모임" 프로그램에 이은숙 (응급실 수간호사)의 응급처치
      에 관한 강좌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11월 19일 장진헤어아트 소속 곽경숙 미용사 외 1분이 오셔서 환우 16명의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자원봉사의 손길 감사합니다.
 4> 11월 20일 "요리실습" 프로그램에서 군만두를 만들었습니다.
 5> 낮 병동에서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충주댐, 영화관,
      레스토랑을 다녀왔습니다.
 6> 지난 10월 17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알코올중독 환우의 가족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 직원 및 외래 소식 ♣


 1> 11월 20일 느티나무(정신재활) 후원회의 활동보고 및 연말 결산모임이
    있었습니다.
 2> 11월 26일 카톨릭병원에서 열린 중독정신의학회에 신정호·민성호 교수,
    한준규·김혜경·신승우 전공의가 참석했습니다.
 3> 11월 30일부터 김혜경 전공의가 의국장으로 수고하십니다.
     그동안 한준규 전공의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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