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방

                                     
       1999·1

                                            발행인·박기창 / 편집인·김성숙 /

                                            1999년 1월호  제 130호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원주기독병원 정신과

                                                 강원도 원주시 일산동 162번지   
                                                 ☎ (0371) 741-1260,  FAX (0371) 743-5385

 

  꿈꾸는 공간
                                 

♤ 그녀 2 ♤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영혼이 된 네가 지금 내 곁에 있으면
어느 날 당신이 내 손을                            나는 용기 내어 너를         
잡아 주었을 때                                       품에 감싸고 사랑한다고 말할텐데....
내 인생이 새로운 출발을 했답니다.
                                                             단순히 친구인줄만 알았던 니가
네, 정말 그랬습니다.                                나에게는 행복 그 자체였고
내가 알고 있는 인생은 외롭기만 했고        그냥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따랐을 뿐입니다.     너는 너무나 편했지!
이제 고독한 밤에서 자유로워 졌습니다.
오히려 이 저녁이 쉬 지나가 버리지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말았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너는 나의 전부가 되었고
지금 당신이 내 곁에 있으니까요.               나에게는 소중한 삶,
                                                             사랑, 행복이었어.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하면
당신은 지나치다고 생각하겠지요.             너와의 이별로
당신이 있으므로 내 행복이 있어요.           나의 삶, 사랑, 행복 사라졌고......
인생이란 책은 간단해요
이미 한 페이지가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시들면
나도 그렇게 된답니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진실입니다.

사랑한다.
그때는 내가 너무 몰랐어.
지금은 아니야!                                              노○정
늦었지만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                 (낮 병동 퇴원후 사회생활 적응中)
아니, 사랑했다고                                               
너와의 시간과 너와의 대화가 그 증거고
너와의 만남이 그 증거이듯....

 


생각하는 오솔길

 ♤ 정신과 실습을 마치며 ♤

  난 참 이상한 1월 한달을 보냈다.
처음에는 실습이 힘들어‘과연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걱정과 염려 속에 긴 첫째 주를 보내고는 둘째, 셋째, 넷째 주는 무척이나 빨리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벌써 내일은 실습 마지막날이다.
  실습 전에는, 다양한 과거와 현재를 지닌 환자들과 지낼 생각에 기대와 설렘이 마음 한가득 있었는데 막상 실습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생각지 못했던 말과 상황을 대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서 알아감은 사람을 정들게 하는 것인지...... 어렵사리 꺼낸 말에 “그거 알아서 뭐 하게요?” 라는 차가운 말로 대꾸하던 ***님, 정말 나를 막막하게 했었지만 이제는 자꾸만 '언제까지 나오냐' 며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사이가 되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차 마시고 이야기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은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때로는 꺼내기 힘든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는 모습에서 환자분들의 심정을 헤아리기도 공감하기도 하였다.
  아들로서 딸로서 혹은 부모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지키고 싶어하시는 환자분들의 바램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며 작은 시를 옮겨 적어봅니다.


아침
                                시인  천상병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연세대학교 매지리 캠퍼스 재활학과 4학년  조 현진


차 한잔의 이야기

 

♤ 나를 변화시키는 여행 ♤

 

2달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귀중한 시간 시간들이었다.
그야말로 "자기 점검"의 시간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너무 숨가쁘게 살아왔다.

E.H.Ca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지나온 시간을 재점검함으로써 더 나은 "지금 여기-현재"를 가질 수 있고 미래 또한 희망적이라는 확신이 선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울고 고민하고......    그러나 깨달음의 순간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은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다.  
간단한 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고 살아온 내 인생의 절반(34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 절제된 삶, 역동적인 삶-을 영위하리라.

병원에서의 2개월간의 치료는 내게 너무 큰 행복을 주었다.
검정과 회색으로 일관된 지난 6년. 이제 나는 예전(학창시절)의 나처럼 하늘색, 흰색,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가슴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사람이 되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53병동

                                   엄○숙

 


치료단상

 

  아직은 생소한 99년도를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이제는 쌀쌀한 기운을 뒤로한 채 밝은 햇살을 받으며 발돋음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자연은 그들의 인생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순리대로 변화한다.  문득문득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의 인생살이는 어떠한 건지 되새기어 본다.

  94년도에 입사한 후 내게는 크고 작은 변화 매개체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직장 새내기,  새 직장에서 적응을 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
새로운 대인관계에서의 소소한 갈등,  내 심경의 변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난 기쁨,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요구되는 능력,  
병실구조의 변화 - 통합,  새 생명의 탄생......

  그때 그때마다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덜 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보살핌과 능력의 채워짐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것은 나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었다.  주위에 있는 가족과 직장 동료, 사회활동 회원 모두의
마음 마음에서 전달되고 연합되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정신과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하고 좋은 점은 내가 바뀔 수 있었던 것.                          즉, ″변화 ″인 것이다.
좀 더 성숙해 지고, 전인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연륜의 폭넓은 이해와 인생에 대한 많은 재산이 생긴,  삶의 부자가 된 듯한 이런 느낌과 열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리라!  그래서 감사하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  
또한 생명을 탄생시킨 후 가슴깊이 느낀 점이 있다.
우리 환자들이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출산의 고통을 경험한 후에야 이세상의 모든 탄생은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 뒤에 탄생되고 성장한 우리 환자들이 다 소중하게 여겨지고 사랑스럽다.  
눈물겹도록 사랑스럽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리라 ∼.


                                        사회복지사  김성숙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이야기

 

♤ 부모님 단상 ♤


  난 어린 시절을 가난 속에서 보냈다.  우리 어린 시절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어려웠지만 특히 우리 집은 더욱 궁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가 겪은 가난이나 불행을 내 자녀들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으리라고, 난 자라면서 다짐하며
어른이 되어 갔다.  돈을 벌기 위해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밥만 잘 먹이고 옷만 입혀 놓으면 그저 자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것저것을 기웃거렸다.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울다 지쳐 아무렇게나 뒹굴다 잠이 들곤 했다.  그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나는 내 생활에 계획을 세웠다. 계획서를 보며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을 들먹이며 남편은 내게 욕심이라고 나무랐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올라가지 못하니까 쳐다라도 봐야될 거 아니냐" 면서....
그리고 늘 버거운 계획을 세워 남편도 아이들도 그 계획안으로 들어서길 바랬다.  그렇게 하자니 남편도 아이들도 성격이나 취미생활 등은 나의 욕심 많은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모두 포기해 버렸다.
  차츰 착착 진행되어 가는 나의 계획에 나는 만족감을 느끼며, 또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깨에 힘을 주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성공한 엄마를 훌륭하다고 존중하며 나의 계획과 성공에 대해 찬사를 보낼 거라고 큰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이 시대를 발언하며 의견을 내세우거나 나의 계획을 축소시키자는 제의를 가끔 해오기 시작했다.  난 아이들이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따라 오지 못할까봐 의견을 짓누르고 꾸중만 해댔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연실 엄마의 큰 목청에 주눅이 들고, 옳고 그름을 내세우지 못한 채 말문을 닫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옛날(가난했던 시절)을 자꾸 들먹이며 아이들이 말하는 시대적 감각도 잊은 채 나의 생활에 맞추려고만 애를 썼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이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 의해 지출되는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을
미움의 도가니로 만들기 시작했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는커녕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줄다리기가 변하여 말문은 더욱 막히고, 그것이 악화되어 마음의 문까지 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면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잘못된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비현실적으로 가는 아이를 보면서 때론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러기를 여러 날, 병인지도 모르고....  병원생활은 시작되고 아무리 입원을 부정해보고 꿈이기를 바랬지만 그러나 엄연한 사실인 것을....
  병원에서의 난 빠짐 없는 보호자모임과 가족상담을 통해 서서히 내 생각이 잘못됨을 발견하고 아이가 확실히 병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인격이 있는 것을....   자기 주장이 뚜렷한 것을 늘 묵살하며
지내온 것이 얼마나 과오였던가! 또한 시대적으로도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나보다 20여년이 훨씬 지난 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까마득히 옛날로만
전해지는 내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서 엄마와 같이 살자고 내 생활 안으로 끌어들이고, 내 계획에 발맞추기를 바라며 내가 못 이룬 꿈을 아이들에게 기대한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나!  그리고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짐이 되었는가를
몇 번이고 반성하며 후회해 본다.  
  아이들의 생각이 옳았던 것을 잘했다고 칭찬 한번 진실하게 해 주지 못한 것을 이제 생각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욕심으로만 가득했던 내 마음속에 사랑이란 자상함과 따스함의 대화가 비집고 들어올 곳이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그리고 사랑하기로 했다.  비현실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의 행동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로 했다.  왜곡된 생각 때문에 늘 나와 다툼이 있었던 그것도 사랑하기로 했다.  
  용기를 주었다.  자신감을 잃어 가는 아이에게 "너는 꼭 나을 것이야",

"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다해 고쳐줄 것이야,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살자." 하며 수없이 쓰다듬어 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아이를 쳐다보며 칭찬과 격려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참고,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과
신뢰로써 마음의 문을 열게 할 것을 확신한다.

 

                                                낮 병동   정○희 어머니

 

   
오고 가는 이야기들

 

 ♣ 병실소식 ♣


 1> 1월 1일 신정을 맞아 환자들의 특박이 있었습니다.
 2> 1월 8일 "사랑방 모임" 프로그램에 신년을 맞이하여 한 희철 목사
    (단강감리교회)의 좋은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1월 15일 C.C.C 음악선교단 New-life 찬양팀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바쁘신 일정 중에서도 오셔서 좋은 시간 마련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4> 1월 15일 "요리실습" 프로그램에서 김치 부침개를 만들었습니다.
 5> 1월 22일 "오락회" 프로그램에 김 종석 레크리에이션 강사(자마 이벤트)가      자원봉사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6> 1월 24일 제일장로교회 청년부 소속 5명이 환자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임을      했습니다.  앞으로 매달 1회씩 자원봉사 하기로 했습니다.
 7> 1월 29일 "요리실습" 프로그램에서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8> 낮 병동에서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볼링장, 노래방, 영화관      을 다녀왔습니다.  이 연덕 작업치료사가 담당합니다.

 

 ♣ 직원 및 외래 소식 ♣


 1> 1월 14일 시행된 전문의 시험에 본원 전공의 5명이 합격했습니다.
    예정된 근무지입니다.
    문막 영생병원 - 박 정은, 경북 영천의 마야병원 - 박 규태,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 서 동향
 2> 안 정숙 교수는 영국런던대학에서 소아정신과 디플로마과정을 1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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