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방

 

                                      발행인·박기창 / 편집인·김성숙 /

                                      1999년 5·6월호   제 133호

 


♤ 노래의 날개 위에 ♤

화창한 계절, 여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으리라
골똘히 생각나는 잡념을 떨쳐 버리고 마음껏 외치리라
마음속에 생각하는 노래가 있다면 모두가 즐기는 노래이리라
불러 보고 싶은 저 환상의 노래
모두에게 전해지는 이 따뜻한 기분
화창한 날,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정신과에서 근무한지 3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했지만 우리 환자들이 적응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게 적응한 것 같다.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기도 했고, 내가 참여하는 곳은 어디일까 기대도 했는데 나에게 다가온 것은 맡겨진 담당 환자들......
  이들은 나를 신뢰하고,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답답한 이곳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나에게 퇴원을 요구한다. 또 어떤 이는 나가도 어떻게 살지 막막해 하기도 한다. 이 곳은 온갖 고민들과 온갖 힘든 삶을 가지고 온다.
  빨리 풀어놓았으면...... 빨리 닫혀진 마음들이 열렸으면 하고 바라지만 서로를 알기에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만나보면 다들 고귀한 사람들이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바깥과 닫혀 있는 세상, 이 안에 모여 있는 우리들, 하염없이 긴 시간만이 우리의 침묵을 지켜준다.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편견이 있다. 왜 우리를 무시하는 걸까! 우리의 모습에 정말로 이상이 있는 걸까!
  사랑하며 살자! 믿으며 살자! 외쳐본다.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은......
  내일이면 6월이 시작된다.  화창한 봄날, 우리에게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길 빈다.  모두에게 따뜻한 노래가 들려지길 마음속에서 음미해 본다.
                                    
                                                전공의  전성균

 

꿈꾸는 공간
               

  
♤ 여름이 오면 ♤

 

매미가 울면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서 독서를 하고 싶다.
독서를 하다가 매미가 울음을 그치면 난 잠이 들어 버린다.

꿈에서 하얀 꽃가루가 하늘에서 마구마구 떨어진다.
그 속에서 난 혼이 되어 춤을 춘다.
그 혼은 바로 나의 분신이다.


                            53병동 이○숙

 

 

 

♤ 여름에는 ♤

여름에는
맑은 물과 공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인다.

바닷물 속에
장구치던 아이들 모습이 생각날 때
나는 잠시 사색에 잠긴다.

올 여름에는
무엇이 나를 찾을까?


                            53병동 안○선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이야기

                    ♤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

  아이가 처음 발병했을 때는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어나던 따사로운 4월 중순이었다. 그 이전에는 사춘기라서 새침하려니 하고 별 관심을 써주지 못했다. 대학 3학년이라 신경이 예민해졌으리라 생각하면서 병원이라는 곳에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증세가 겉으로 드러나면서 전문의를 찾아봐야 한다고 남편은 제의했었다.  
아이는 "내가 왜??, 어디가 어때서 병원엘 가냐?" 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현실에 맞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병임엔 틀림없는데 ‘그러다가 말겠지... 잠깐 힘들어서 생긴 우울증이거니’했다. 그러나 3일 동안의 단식에 결국 아이는 거실에 쓰러졌다. 남편은 아이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자폐증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멀거니 나의 얼굴만 응시하던 그 애처로운 눈동자를 뒤로하고 병원 문을 나설 때 그 동안 참았던 오열이 터져 나왔다.
「정신과 53 병동」왜 하필 우리 아이가? TV에서나 가끔 드라마를 통해 보아왔던 정신과!! 그곳에 내가 출입하게 될 줄이야...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병원! 그런데 내 식구 중 가장 믿어왔던 아니 의지했던, 기대했었다고 해야 옳을까? 그런 딸아이가 입원이라니!!  잠을 푹 자고 나면 훌훌 털어 버리고 병실을 나올 것만 같은데... 아니 이것은 내 꿈속이라서 자고 나면 딸 아이는 춘천에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오겠지... 근데 그것도 폐쇄병동이라니...
  입원 후 3일만에 전화를 걸었다. 약과 주사로써 좋아졌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러나 2주 후 면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환자 아닌 환자가 되어야 했다. 일이 손에 걸리질 않아 집안 일은 온통 시어머니가 도왔다. 어린 시절 보아왔던 환자들 생각에 밀려오는 상념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첫 번째 면회가 되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이를 깨물며 참아야 했다.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목도 가누지 못하고 눈도 바로 뜰 수 없던 모습! 엄마라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집에선 저 정도로 심하지 않았는데... 병이 악화된 것일까? 몹시 궁금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엄마 따라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매달리는 아이를 두고 담당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약 부작용이고 몇 일 있으면 사라지는 증상이라는 말에 안도의 숨이 나왔다. 언제쯤 회복이 가능하냐고 조급해 하는 나의 질문에 단정을 지을 수 없으니 두고보자는 대답을 듣고 또다시 걱정이 앞섰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권유(?), '병이 한가지면 약은 백가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
  가족모임에서의 교육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 교육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같았고,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이 병원을 나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병원에서는 의사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의학적인 낭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온 나는 그런 것에 현혹되진 않았다.
  두 번, 세 번 면회하는 동안 퇴원이 길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타 보호자들이 경험을 통해서도 아직은 퇴원시기가 아니라고 하는데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딸아이가 정신과에 입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이의 퇴원을 요구하는 전화를 날마다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하는 아이, 집에 오고 싶어하는 마음이 애처로워 날마다 안타깝기만 했다.
  3개월만에 가까스로 퇴원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첫 번째 입원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더 있다가 퇴원해야 하는데... 정말 잘 몰라서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퇴원으로 모든 병이 나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가게를 하던 나는 바쁜 핑계로 아이에게 예전과 똑같이 대해 주었다. 행동이 느린 것이 답답해서 나는 짜증을 부렸고 설거지며 빨래를 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야단을 쳤다. 그때마다 아이는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아이는 복학을 해서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가끔 눈물을 흘렸고, 숙제가 힘들다며 누워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난 "재발"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한번의 입원생활로 아주 병을 고친줄 알았다. 그리고 졸업할때까지는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잘해 내리라고 생각하고, 가게일에만 열중하였다.
  겨울 방학을 해서 집에 와 있을 때는 언제나 아이혼자였다. 가게에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고, 집에서 잠만 자려 하였다. 하얀 눈이 수북히 쌓인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겨울이 깊어가던 1월 중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래 면담이 힘들었다.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안절부절했다.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춘천병원엘 갔다.  그러나 그 곳에서는 받아주질 않았다.  병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기독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혼자 있으면 재발하기 쉬운 병이라 했다.

보호자가 필히 도와주고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가게를 팔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가게였고 내겐 꿈이 있었다. 그 꿈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아 아이가 미워졌다.
  "너 때문에 나는 이대로 집에 들어앉아야 하다니..."
비현실 속에서 생각하고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야속하고 못마땅하고, 그래서 내 음성은 항상 짜증으로 가득 찼다. 야망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나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음박질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것 또한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두 번째 입원에서 낮 병동으로 옮겼다.  
혼자서 병원을 다니지 못해 나와 항상 동행을 했다. 길이나 버스에서라도 남에게 비춰지는 아이의 모습이 싫어 같이 다니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온 식구들이 불안해하고 병에 대한 병식이 없어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몰라 당혹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아이는 식구들을 두려워하고 집에 들어오기를 꺼려했다.  4개월간의 낮 병동은 그다지 길은 것은 아닌데 더 오랫동안 다녀야 옳았을 것을...  또다시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퇴원을 시켰다.
  나는 가족 상담하는 것을 귀찮아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지어서 나로 인해 아이가 상담이 필요한 것인가 사뭇 내게 불만이었다. 집에서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다.
  낙엽이 바람에 견디지 못해 떨어지던 늦은 가을...
편치 못한 가정분위기 속에 세 번째 재발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않던 증상들을 보였다. 과격한 행동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나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고 다리에 맥이 풀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이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내 우는 모습을 보던 아이는 더 불안해했다.  입원을 권유했을 때 아이도 너무 힘들어 병원에서 쉬었다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입원을 하자마자 날마다 퇴원을 요구하는 전화를 걸어댔다.  
  난 세 번째 입원한 아이가 왜 그렇게 측은한지... 우리 식구들이 도와주지 못한 탓이리라...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불쌍한 것!! 삼삼오오로 몰려다니는 대학생들만 봐도 나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이번엔 꼭 나을 때까지 입원실에 두자!!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라도 기다리자!!  섣불리 퇴원시키지 말자...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말자... 꼭 고쳐주겠다고 너는 꼭 나을 것이라고...  이젠 앞으로는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자. 나도 용기를 갖고 고칠 수 있다는 신념을 갖자!

가족들을 다 불러모았다.
병원에서의 보호자교육을 받은 그대로 나는 온 식구들에게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간절히 애원했다. 틈만 있으면 병에 대한 인식과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었다. 고칠 수 있는 병이고 퇴원 후에도 조절하는 것이라고... 약에도 의존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심을 가져 주는 일이며 가족의 분위기나 대인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자고 얘기하노라니 밤이 이슥해졌다.  
  그후 며느리도 아들도 시간만 있으면 병원으로 전화를 했고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의 병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호전되어 갔다. 가족상담에 남편도 참석했다. 가족상담은 늘 우리 식구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갔다.
  미움이었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수년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진솔하게 나누지 못했던 마음속의 얘기들을 의사에게는 다 할 수가 있었다.  '내 뜻대로 살아온 얘기... 애들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얘기... 내 아이들을 내 소유물인양 화분의 꽃처럼 내 맘대로 심고, 잎사귀도 자르고, 꽃잎도 떼 내고 하듯 키워온 잘못된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보니 내 인생관이 달라져 있었다.
  마음이 약해져 병의 인식 없이 비의학적인 방법으로 아이의 병이 만성화될 뻔한 아찔함도 없지 않았지만 오로지 한가지 신념으로 의사에게 맡겼던 내 굳은 의지는 병이 완쾌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병원치료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다.
  퇴원하여 명랑한 모습으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병원 속에 잘 갖추어진 낮 병동의 프로그램과 권위 있는 선생님의 상담으로 인간의 귀한 존엄성을 되찾는 시설이 있음에 감사한다. 특히 건강을 회복하는 의학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드린다.

 

                            정○희 (낮 병동 퇴원 후 복학 함) 어머니

 

치료단상


♤ 나, 너 그리고 우리 ♤

  살다보면 어떤 사람과는 잘 통하는데 다른 사람과는 괜히 안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이럴까?"하고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설명하고 구분하는 특성은 무수히 많은데 다음은 그 중에서 네 가지 특성만 뽑은 것입니다.  각각의 특성을 두 가지 형태로 나누었습니다.
  한 특성씩 읽어나가면서 자신을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A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한다.
A'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B는 매우 현실적이고 근면 성실하지만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기 쉽다.
B'는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숲을 전체적으로 보고 새롭고 복잡한 일을
  좋아한다.

C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한 기준을 갖고 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좀 무디다.
C'는 옳고 그른 기준에는 흐리멍텅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민감하    고 잘 배려한다.

D는 정리정돈을 잘 하고 추진력을 갖고 있지만 계획이 어긋나면 어쩔줄을   몰라한다.
D'는 충동적이지만 융통성이 있고 관대하다.

  당신은 위에서 살펴본 특성들 중 어떤 면을 갖고 있습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을 어떤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타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어떤 면에서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혼잣말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너 그리고 우리를 좀더 이해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임상심리사  왕미란

 

사랑방 소식

 ♣ 병실소식 ♣

 1> 5월 7일 "요리실습" 프로그램에서 (주)씨·엠 개발(직원식당 운영업체)
     김영부 과장의 햄버거 스테이크 강습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 5월 21일 "사랑방모임" 프로그램에서 김승환 부원목의 가정의 달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3> 5월 31일 장진헤어아트 소속 미용사 2명이 환자 12명의 머리를 손질
     했습니다.  자원봉사에 감사합니다.
 4> 낮 병동에서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노래방, 영화관,
     드림랜드를 갔다 왔습니다.
 5> 낮 병동의 김○규 환우가 5월 10일부터 중앙부에서 5시간의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6> 6월 1일 한국이웃사랑회 강원지부 직원 5명이 심리극을 관람했습니다.
 7> 6월 18일 단오를 맞아 이발비 항목에서 절편 떡을 했습니다.
 8> 6월 23일부터 입원환자 가족치료모임의 형식이 정신과 교수의 강의와
     사회복지사·전공의의 토론으로 편성되었습니다.
 9> 6월의 "요리실습" 프로그램에서 떡볶이, 감자튀김을 했습니다.

 ♣ 직원 및 외래 소식 ♣

 1> 5월 28일 서울에서 열린 법정신의학회에 박기창 교수, 한준규 전공의가
     참석했습니다.
 2> 6월 4일 정신분열학회에 한준규·권오인·이황빈 전공의가 참석했고,
     신정호 교수와 이요성 전공의는 공주보호감호소·공주국립정신병원에
     방문 견학했습니다.
 3> 6월 7일 타과 알코올 가족교육·치료모임이 매주 월요일 오후 2∼3시
      외래 집단치료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4> 6월 7일 외래에서 정신보건 전문요원의 실습에 관한 직원들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5> 6월 17∼19일 화승레스피아에서 열린 연수교육에 한준규·김혜경·
    권오인 전공의가 참석했습니다.
 6> 6월 26일 천은사 계곡 산행으로 정신과 직원단합회를 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원주기독병원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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